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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 하는 역사 여행

경주 02. 신라 석씨 왕조의 시조 석탈해 _ 석탈해왕탄강유허 / 나아해변 / 경주 월성

by 아이스_라떼 2022.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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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경주 여행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입니다.

 

집에 오면 머리 속에서 사라질 여행  VS  기억에 남아 한국사 공부에 도움이 되는 여행

 

위의 둘 중에 어떤 여행을 할 지는 여행 가기 전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달려 있어요.

그 곳이 그 곳 같은 유적지도 사전 정보와 관계 맺기를 하면 자연스럽게 기억에 남지요.

신라 시대 이야기와 관련 유적지 살펴보기 두 번째 이야기, 신라 제4대왕이자 석씨 왕조의 시조 석탈해입니다.

 


 

신라 석씨 왕조의 시조 석탈해 이야기_ 신라 제4대왕 석탈해 신화(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출처: 신라밀레니엄파크(네이버 블로그)

 

탈해왕의 기록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서 찾아 볼 수 있어요.

남해왕 때에 아진포에 혁거세왕에게 해산물을 바치던 아진의선이라는 노파가 살고 있었어요. 어느날 바다에서 까치들이 떼를 지어 날며 우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노파가 살펴 보았더니 거기에 배 한 척이 있었고 배 안에 큰 궤짝이 있었어요.

궤짝을 열어보니 그 속에 단정하게 생긴 한 사내아이와 여러 보물, 노비들이 들어 있었어요. 노파가 사내아이를 7일 동안 보살펴보자 아이가 스스로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본디 용성국(龍城國) 사람이다. 그 나라의 왕비에게서 알로 태어났으므로 버림을 받아 이곳에 닿았다."

아이는 말을 마치자 지팡이를 끌고 두 사람의 종과 함께 토함산에 올라가 거기다 돌무덤을 파고 7일 동안 머물렀어요. 그런 뒤에 산에서 내려와 성 안에서 살 만한 곳을 찾던 중 호공의 집에 도착해요. 그는 호공의 집 곁에 남몰래 숫돌과 숯을 묻고서 다음 날 아침 관가에다 그 집은 자신의 조상이 대대로 살았던 집이었는데 자신이 잠시 집을 비운 사이 호공이 들어와 차지한 것이라고 주장해요.

그는 숫돌과 숯을 증거물로 제시하여 그 집을 차지하게 되고 이 이야기를 들은 남해왕(=박혁거세와 알영의 아들)은 이 사람이 슬기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여 그를 첫째 공주와 결혼 시켰답니다.

 

 

이름이 왜 석탈해일까?(출처: 디트NEWS24)

 

탈해는 어려서부터 말과 글 그리고 지혜와 풍채가 뛰어나 남해 왕께서 소년을 궁에 들에오게 하였어요. 왕이 이야기하던 중에 소년의 성과 이름이 없음을 알았어요.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하며 직접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해요.

“소년이 처음 태어날 때 까치들이 우짓다가 그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아기만 남았으니,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자를 없애고 옛 석(昔)자만 남겨 성으로 하고, 궤를 열고 알에서 깨어났으니 이름을 탈해(脫解)로 하라.

 


 

아이와 함께 볼 석탈해 관련 영상

 

1. (초등 저~중학년) 책읽어주는 구연동화 한국역사동화 난생신화의 탈해왕(14:04)_ 북토비영상도서관

 

 

2. (초등 중~고학년) [맞수열전] 석탈해와 호공 Part 1(11:28)_ LiveArt

 

 

3. (초등 중~고학년) [맞수열전] 석탈해와 호공 Part 2(5:58)_ LiveArt

 

 

4. (가족 모두 함께) 월성 -경주여행 필수코스-(3)신라인구 100만명이 어떻게 살았을까(10:55)_ 문화야 놀자TV

 


 

가봐야 하는 유적: 석탈해왕탄강유허(昔脫解王誕降遺墟)_ 신라 제4대왕 탈해왕(재위 57~80)이 탄생한 장소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 이 유적은 조선 헌종 11년(1845) 그 곳에 하마비와 땅을 하사하여 석씨 문중에서 유허비와 비각을 건립한 곳이에요.

경상북도 기념물 제79호 석탈해왕 탄강 유허비가 있는 비각 입구(출처: 경북신문)

 


 

가봐야 하는 장소: 나아해변_ 석탈해가 담긴 궤짝이 도착한 해변

 

석탈해왕탄강유허가 있는 나아리(羅兒里)는 '나라의 큰 아이가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에요. 나아 해변을 걸으며 깜짝 놀랄 정도로 파란 바다와 석탈해를 소개하는 조형물을 감상해 보세요.

나아해변에 설치된 석탈해를 소개하는 조형물(출처: 영남일보)

 


 

가봐야 하는 유적지: 경주 월성_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

 

경주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에요.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 하여 반월성, 신월성이라고도 하고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이라고도 합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파사왕 22년(101)에 성을 쌓고 금성에서 이곳으로 도성을 옮겼다고 해요. 이 성은 신라 역대 왕들의 궁성이었으며, 문무왕 때는 안압지, 임해전, 첨성대 일대가 편입되어 성의 규모가 확장되었어요. 

성을 쌓기 전에는 이 자리에 호공이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탈해왕이 꾀를 내어 이곳을 차지했다고 해요. 남해왕은 이 이야기를 듣고 탈해왕을 사위로 삼아 탈해가 신라 제4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월성 구역도(출처: 국립문화재연구원)

 

성의 동, 서, 북쪽은 흙과 돌로 쌓았으며 남쪽은 절벽인 자연지형을 그대로 이용하였어요. 성벽 밑으로는 물이 흐르도록 인공적으로 마련한 방어시설인 해자가 있었으며, 동쪽으로는 경주 동궁과 월지로 통했던 문터가 남아 있어요. 이 밖에도 성 안에 많은 건물터가 남아 있으며 1741년에 월성 서쪽에서 이곳으로 옮겨온 석빙고가 있습니다.

 

월성 주변의 유적지인 경주 동궁과 월지, 경주 월성, 경주 첨성대, 경주 계림을 월성지구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어요.

제 3회 월성 사진촬영대회_천년 궁성, 월성을 담다(출처:문화재청)

 


 

신라 제4대 왕이자 첫 번째 석씨 왕 석탈해 이야기 재미있으셨나요?

아이와 함께 재미있고 의미 있는 경주 여행 하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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